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단상/🔵오만가지

상처를 금으로 메운다 - 부서졌기에, 나는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었다.

by senpebble 2025. 6. 17.

 

"깨진 그릇을 버리지 않고, 금으로 메운다는 것"

일본에는 ‘킨츠기(金継ぎ)’라는 오래된 복원 기법이 있습니다.
뜻은 ‘금으로 잇는다’는 말.
깨진 도자기의 조각들을 옻칠로 붙이고, 그 위에 금가루를 발라 다시 하나의 그릇으로 되살리는 방식입니다.
놀라운 건, 그 ‘금이 간 자리’를 감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금으로 더 도드라지게 드러냅니다.

흠은 숨길 것이 아니라, 견뎌낸 증거라는 철학.
깨졌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는, 역설의 미학.
킨츠기는 단지 도자기를 복원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처와 회복, 시간과 존중, 삶과 예술을 꿰뚫는 깊은 사유입니다.

마치,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수선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차분한 다실 위의 킨츠기 찻잔 : "부서졌던 자리에 차가 고이고, 그 안에 온기가 다시 채워진다."


도자기가 깨지는 순간, 그것은 끝난 것이었다.  


쓸모를 잃은 파편,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물건.  


그 파편을 모아 다시 붙이고, 

그 틈을 금으로 메우는 사람들의 손길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들은 그것을 ‘킨츠기’라 불렀다.

 


킨츠기는 깨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금이 간 자국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 흠은 결함이 아니라 흔적이며, 

결점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의 무늬다.  


그릇은 다시 완전해지지 않지만, 

대신 유일해진다.  


똑같은 금의 길을 따라 이어붙인 그릇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삶도 그렇게 깨어진다.  
어떤 날은 말 한 마디에, 

어떤 날은 아주 조용한 이별에 금이 간다.  


한 번 깨어진 마음은, 아무리 정성껏 붙여도 예전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상처를 숨기려 한다.  
흠 없는 표정과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자신의 부서짐을 감춘다.  

 

그러나 킨츠기의 철학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상처를 감추지 않고, 

그 위에 시간을 바르고, 마음이라는 금을 입히는 일.  


그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킨츠기의 기술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다.  
한 조각 한 조각을 옻으로 잇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금가루를 입히는 데는 조심스러운 손길이 따른다.  


모두 다, 

빠르지 않다.  
그 느림 속에서 사람들은 상처와 시간을 함께 껴안는다.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회복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다시 이어진 그릇은, 

더 이상 이전의 그것을 복제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 된다.

 

 

금이 얼굴에 이어진 사람의 초상화 : "무너진 나를 껴안은 흔적은, 나만의 윤곽을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너진 채로 살아가는 대신, 

무너진 곳에 금을 그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을 흉내 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금을 통해 세상과 연결된다.  


고통은 공명을 낳고, 

그 공명은 타인의 흠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래서 킨츠기는 말없이 가르쳐준다.  
상처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나야 할 것이라고.  
드러냄으로써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어쩌면 진짜 아름다움은 결코 완벽에서 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깨어짐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 다시 의미를 덧입힌 데서 피어난다.  


마치 찬란한 금의 실선처럼, 

상처는 어느 날 아름다움의 일부가 된다.

 

 

클림트 스타일의 골드 파편과 조화된 질감 : "불완전함 위에 꽃처럼 피어오른 결, 그것이 존재의 무늬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