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세상을 그냥 ‘보는 대로,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는 걸 깨달았다. 똑같은 뉴스, 똑같은 사진, 똑같은 말 한마디가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걸 보며, 나는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 짜놓은 창틀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틀, 즉 생각의 창문이다. 이 창문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과 교육, 문화와 환경에 의해 서서히 만들어진다. 그리고 프레이밍(Framing)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우리의 창문에 특정한 색을 칠하려는 시도다. 문제는 우리가 그 색깔에 익숙해져서, 그것이 원래 세상의 색깔인 줄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아이가 웃고 있고, 그 뒤로는 무너진 건물이 있다.
같은 사진인데 어떤 이는 “전쟁 속 희망”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현실을 무시한 미화”라 말한다.
사진은 변하지 않는다.
달라지는 건 우리가 보는 방식이다.
생각은 자유롭지 않다. 프레임이 허락한 만큼만 날개를 편다.
이것이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이자,
생각의 방향을 미리 정해놓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다.
마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프레임에 맞는 정보만을 골라내고,
맞지 않는 것들은 쉽게 무시하거나 왜곡한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확신에 찬 세계에 갇히게 된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믿는 이 생각은 진짜 내 생각일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뉴스에서 들은 말,
SNS에서 익숙해진 주장,
부모가 어릴 적 해준 말들…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렌즈가 되어 내 눈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나는 보고 있었지만,
나로 보지 않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틀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감옥이 된다.
그리고 깨달았다.
프레임은 때때로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였지만,
더 자주 나를 가두는 벽이었다는 것을.
특히,
프레이밍이라는 기술은 이러한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조작한다.
어떤 단어를 고를 것인가,
어떤 그림을 붙일 것인가,
어떤 순서로 전달할 것인가.
정치, 광고, 언론…
세상은 너무도 정교하게 우리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건 당신이 원한 생각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에게 씌워진 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프레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프레임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
그 시작은 질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다른 시각은 없을까?”
“이 표현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그렇게 프레임을 의심하고,
프레이밍을 해체하며,
우리는 조금씩 틀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진실은 대개 우리 눈앞에 있지만,
우리가 그 진실을 ‘어떤 틀 안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의 지성은 그런 틀을 깨부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프레임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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