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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 vs 종이책 : 종이책은 느림의 미학이고, 전자책은 즉흥의 무대다. 나는 오래전부터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서 서성였다. 서점에서 책의 표지를 쓰다듬고, 한 장씩 넘기는 그 촉감에 중독된 적도 있었고, 밤늦은 지하철 안에서 작은 화면을 밝히며 글자들을 쫓은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책을 단순히 매체의 차이, 종이냐 디지털이냐로 나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생각보다 더 부드럽고, 더 깊은 질문을 품고 있다. 책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원하는가? 종이책을 펼칠 때마다 나는 마치 새로운 공간에 입장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책의 무게, 표지의 질감, 그리고 첫 페이지를 넘길 때의 긴장감. 그것은 마치 깊은 숲 속을 걸을 때처럼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게 만든다. 그렇게 한 장씩, 한 문장씩 나를 통과해가는 문장들은 손끝에 흔적을 남기며, .. 2025. 7. 1.
마음과 정신 : 마음은 무너져도 다시 피어나지만, 정신은 한 번 꺾이면 오래 앓는다. "마음"과 "정신"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섞여 쓰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결이 있습니다. 마음은 늘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손에 잡힐 듯한 감정, 누군가의 표정에서 읽히는 작은 떨림. 반면 정신은 단단하고 투명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 생각을 가로지르는 곧은 선.우리는 종종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신 차려야지"라고도 합니다. 같은 듯 다른 이 두 단어의 틈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의 결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정신으로 버틴다. 마음은 늘 흔들린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쉽게 무너지고, 작고 사소한 친절에 다시 피어난다. 마음은 꽃처럼 여리고, 물결처럼 가볍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지키고 싶어 한다. 상처받지 않게, 쉽게 시들지 않게, 그러나 결.. 2025. 6. 30.
따뜻한 사람과 냉철한 인간 사이에서, 무엇을 더 선택하나요? 어릴 적엔 사람이라는 단어가 더 따뜻하게 들렸습니다."좋은 사람 되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손에 잡힐 듯한 온기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인간"이라는 단어가 더 자주 입에 오르내렸습니다.조금은 무겁고, 어디선가 거리를 둔 느낌.사람과 인간, 같은 듯 다르고, 닮은 듯 서로를 비추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따뜻한 존재다. 사람과 인간, 두 단어 사이엔 보이지 않는 강이 흐릅니다. 사람은 부드럽습니다. 친구를 떠올릴 때,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사람'을 씁니다. 그 안에는 표정,체온, 눈빛, 웃음소리 같은 작은 조각들이 담겨 있습니다.사람이라는 말은 늘 가까이에 있고,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습니다. 반면 인간은 멀리 .. 2025. 6. 29.
단맛만으로 충분한 인생이 정말 존재할까? - 삶에서의 오미(五味)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음식 속 다섯 가지 맛, 오미(五味).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이 맛들은 단순히 혀끝을 자극하는 감각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비추는 은유 같은 존재다.단맛은 소중한 순간의 달콤함, 짠맛은 눈물의 흔적, 신맛은 예기치 못한 전환, 쓴맛은 견디는 고통, 감칠맛은 설명할 수 없는 충만함을 닮았다.이 오미는 우리 삶의 계절 같고, 마음의 풍경 같으며, 결국은 우리 존재 그 자체의 맛이 아닐까. 감칠맛은 설명할 수 없지만, 결국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우리는 달콤함만을 원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달콤한 사랑, 달콤한 성공, 달콤한 기대는 어느 순간 짠맛의 눈물과 손을 잡고 나타난다. 기쁨을 씹을 때마다 어딘가에 숨어 있던 쓴맛이 혀끝에 퍼진.. 2025. 6. 29.
마이야르 - 태움과 기다림의 향 서서히 달궈진 팬 위에서, 고기는 마치 긴장된 숨을 내쉬듯 변해간다. 처음의 생기 있는 붉음은 조금씩 부드러운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공기 중으로 스며드는 그 향은 우리의 기억을 흔든다. 모든 순간은 이처럼 익어간다. 너무 빠르면 소홀하고, 너무 느리면 지루하다. 마이야르 반응은 기다림의 맛과 순간의 열기를 동시에 품은, 삶의 축소판이다. 처음엔 불안하다. 너무 세게 달궈진 불은 표면을 태워버리고, 약한 불은 속까지 스며들지 못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하루도, 계도 그렇다. 서두름과 망설임 사이에서, 가장 적절한 온도를 찾는 건 어쩌면 평생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마이야르 반응은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나는 향미와 갈색빛의 예술이다. 팬 위에서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듯, 우리 마음도 시간.. 2025. 6. 28.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철학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문장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멈춰 섰다.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머문다. 그게 가능할까? 아니, 그게 나일까?이 문장은 단순한 논리의 반복이 아니다. 이중의 의식이 깨어 있는 순간이다. 내가 나를 인식하고, 다시 그 인식을 인식하는 그 층위. 존재는 하나가 아니고, 나 또한 하나가 아닌 듯했다.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를 여러 겹으로 바라본다. 생각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빛이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짧고 강력한 선언이었다.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그 말이 너무 평면적으로 느껴졌다. ".. 2025.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