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 앞에 선 인간 - 프리드리히의 뒷모습, 그 고요한 울림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는 '등 돌린 인물의 풍경화','자연 속 고독', 그리고 '숭고함(sublime)'의 감정을 시각화한 대표적 독일 낭만주의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은 대체로 고요하고, 장엄하고, 철학적인 분위기를 띠며, 인물은 대개 작고, 뒤돌아 있으며, 웅대한 자연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바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죠.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얼굴보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감정을 읽을 수 없어 오히려 상상하게 만들고, 나와 같은 시선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 인물들은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거대한 ..
2025. 5. 14.
추상화처럼 구성된 음악, 구상화처럼 말하는 노래― 그림처럼 들리고, 음악처럼 그려지는 순간
선율의 붓질, 가사의 풍경 음악을 듣다가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추상화 한 점 앞에서 멈춰 선 나. 선과 색의 덩어리들이 말을 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일렁인다. 그리고 또 다른 순간, 구상화 앞에서는 구체적인 장면이 기억을 소환했다. 인물의 눈빛, 풍경의 공기감, 그 모든 것이 어느 장면과 겹쳐졌다.그때 생각이 났다. 클래식 음악은 추상화 같고, 팝 음악은 구상화 같다.그 비유는 놀랍도록 직관적이었지만, 곧바로 의문도 생겼다. 과연 이 비유는, 정확한가? 아니면, 편리한 오해인가? 클래식은 설명하지 않고, 팝은 숨기지 않는다. 클래식은 추상화처럼 보이고, 팝은 구상화처럼 느껴진다. 그 말은 처음 들었을 때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클래식 음악은 대부분 가사가 없고, ..
2025. 5. 9.
트럼펫, 장엄함과 슬픔 사이에서
트럼펫은 단순히 밝고 화려한 악기가 아니었다. 전쟁터의 신호, 제국의 위엄, 사랑의 고백, 그리고 장례식장의 눈물까지 — 그 속엔 수천 년을 건너온 감정의 스펙트럼이 담겨 있었다. 나는 언젠가 밤늦은 시간, 한 소절의 트럼펫 소리에 울컥한 적이 있다. 그건 아마도 그날의 공기, 그 곡의 슬픔, 그리고 트럼펫의 낮은 음색이 만들어낸 감정의 공명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입김이 깃든 금속관을 통해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마음이 흘러나올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오래된 마법인가. 트럼펫은 슬픔마저도 장엄하게 울리는 악기다. 처음 트럼펫 소리를 들었을 때,나는 왜인지 모르게 울컥했다. 그것은 환희를 닮은 음색이었지만,어딘가 쓸쓸했다. 밝고 맑은 소리인데,그 안에 웅크린 듯한 고요함이 있었다. 마치 너무 찬란..
2025. 5. 4.
🎷 재즈(Jazz) : 흘러가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것
‘재즈’라는 단어는 정확한 어원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정력, 기백, 에너지—살아 있다는 감각이란 말과 가까웠다고. 그리하여 어떤 이는 ‘재즈’를 욕망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자유라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재즈는 ‘어쩔 수 없음’에 더 가깝다. 딱 떨어지지 않는 리듬,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누군가의 감정이 마디를 타고 전해지는 그 흐름.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건 어느 날, 늦은 밤 골목을 걷다 우연히 들려온 재즈 트럼펫 소리처럼 내 감정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완벽하지 않기에, 재즈는 살아 있다. 재즈는 흐른다. 하지만 그것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삶처럼 흘러내리는 것이다. 한때 나는, 모든 것은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
2025.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