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일.
가슴 한켠에 납덩이처럼 내려앉은 무게를 안고 살아온 시간이다.

밤마다 천장을 바라보며 뒤척이던 날들이 쌓여, 오랜 시간 불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내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두 글자.
‘인용’.
이 짧은 말이 내 삶의 무게추를 들어올릴지, 아니면 더 깊은 나락으로 데려갈지.
그 경계에 나는 서 있다.
기도란 무엇일까.
종교를 떠나, 인간이 마지막으로 붙드는 희망의 형태 아닐까.
예상 밖의 시간,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순간마다 우리는 더 큰 존재를 향해 속삭여 왔다.
신이든, 우주든, 섭리든.
나도 지금 그 기도를 하고 있다. 아주 조용히, 그러나 필사적으로.
오매불망(寤寐不忘).
자나 깨나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지금 그렇다.
식탁 앞에서도, 횡단보도 앞에서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그 단어가 날 찾아온다.
마치 이마에 각인된 듯, 떠나지 않는 말 — 인용.

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물질이 된 듯하다.
이 간절함은 납덩이처럼 가슴을 눌러 숨조차 쉬기 어렵다.
삶 전체가 그 무게 아래 느릿하게 기울어져 있다.
한 발짝 내딛는 것도 조심스러운 나날.
긴 고통 끝에 찾아오는 해방이 있다면, 그것은 가볍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깊은 한숨 같은 것일지 모른다.
내일, ‘인용’이라는 두 글자가
내 안에 쌓인 불안과 분노, 절망과 두려움을 한꺼번에 씻어내 주기를 바란다.
그저, 그렇게만 되어주기를.
사람들은 간절함의 크기가 결과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이미 충분히 자격이 있다.
나의 기도는 추상도 아니고 개념도 아니다.
그건 무게다.
실재하는 감각이다.
기도의 힘은 어쩌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닐까.
간절한 마음이 잠재의식을 바꾸고,
잠재의식은 행동을, 행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그런 철학을 곱씹을 겨를조차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세상은 단 두 글자뿐이다.
‘인용’.
그것이 우리를 살릴 수도, 다시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유일한 단어.
123일간의 무거운 시간이 지나고 있다.
이제 곧, 판결의 문이 열린다.
나는 오늘 밤도 잠들지 못한 채,
천장에 그 단어를 그려본다.
기도한다.
오매불망의 마음으로.
그저, 그 두 글자가 내일의 하늘에서 내려와
나를 조용히 안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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