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제대로 된 시작’을 기다린다. 충분한 시간, 완벽한 준비, 정해진 계획.
하지만 인생은 그런 걸 허락해주지 않는다. 버려진 조각들, 엉킨 감정, 예기치 않은 순간들.
그걸 꿰매고 붙이며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것이 바로 브리콜뢰르의 삶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브리콜뢰르는 주어진 것을 조합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자”라고. 그는 궁핍과 혼란 속에서도 무언가를 만든다.
완벽하지 않지만, 살아낸다.
누군가는 삶을 설계도처럼 펼친다. 한 줄 한 줄, 예측 가능한 선을 따라 살아간다.
그런 삶이 멋져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설계도가 없었다.
주어진 재료는 찢긴 감정, 닳아버린 관계, 무너진 기대였다.
나는 그것들을 그냥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붙였다. 엮었다. 땜질했다.
때로는 실밥이 밖으로 튀어나왔고, 한쪽이 비뚤어진 채로 남았다.
그래도 그것은 내 것이었다.
‘브리콜뢰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 안도했다.
나는 실패자가 아니라, 조합자였구나.
나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만들고 있었던 것이구나.
세상은 정답을 가진 사람만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브리콜뢰르는 말한다.
“나는 도중에 주워온 것들로도 의미 있는 것을 만들 수 있어.”
내 삶은 설계도 위의 선이 아니라, 구겨진 노트 위에 낙서처럼 그려진 선이다.
그러나 그 선은, 기이하게도 나를 닮았다.
브리콜뢰르의 삶이란,
흩어진 것들 속에서 나를 엮어가는 방식이고,
상처 난 자리를 꽃으로 피우는 연금술이다.
나는 그렇게 매일 나를 다시 만들어낸다.
어제보다 조금 더 엉성하게,
그러나 분명히 살아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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