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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팔레트와 멜로디

기억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다 - 뇌가 그리는 의미의 풍경

by senpebble 2025. 6. 21.
어느 날 아침, 낯익은 꿈을 꾸었다. 유년 시절 살았던 집이었지만 어딘가 조금씩 달랐다. 창문의 크기, 벽의 색, 방의 위치… 모든 것이 미묘하게 틀렸다. 그런데도 꿈속의 나는 확신했다. ‘맞아, 이건 그 집이야.’ 눈을 뜬 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기억은 왜 이렇게 어설플까.
아니, 어쩌면 정확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걸까.

기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 저장이 아니라 그리기다. 우리의 뇌는 일종의 추상화 예술가다.
본 것을 그대로 남기지 않고, 감정과 의미의 물감을 섞어 그 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캔버스에 펼친다

 

기억은 흐린 풍경이다. 가까이서 보면 모호하고, 멀리서 보면 진실이 보인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기억하지 않는다, 의미 있게 남긴다.

 

 

 

우리는 가끔 과거의 어느 날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장면은 언제나 선명하지 않다. 

 

어딘가 흐릿하고, 

부드럽게 번져 있다. 

마치 수채화처럼.

 


과거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질 때, 

그 기억은 하나의 장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느낌처럼 다가온다. 

 

초여름의 따사로운 햇살, 

자전거 바퀴 소리, 

나뭇잎 사이로 스치던 바람. 

 

그날 입고 있던 옷의 색깔은 기억나지 않지만, 

귓가를 간질이던 

그 바람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뇌는 바로 그걸 남긴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지우고, 

의미 있는 것들을 새긴다.

 

 


우리는 종종 기억을 하드디스크처럼 생각하지만, 

뇌는 훨씬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감각은 압축되고, 

사실은 왜곡되며, 

감정은 강조된다. 

 

인상파 화가가 현실의 빛을 왜곡해 그리듯, 

우리 뇌도 자신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다시 그린다. 

 

기억은 완전하지 않기에, 

때때로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

 

지워진 줄 알았던 감정은 여전히, 무언가로 남아 있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말했다. 

우리는 기억을 꺼낼 때마다 

것을 다시 써 넣는다고. 

 

그 말은, 

기억은 ‘다시 보기’가 아니라 ‘다시 쓰기’라는 뜻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내 감정이 기억을 

어떻게 다시 해석할지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진다. 

 

그래서 기억은 바뀐다. 

바뀌기 때문에 살아 있고,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를 구성한다.

 

 


어쩌면 우리는 브리콜라주처럼 살아간다. 

 

부서진 조각들, 

어긋난 퍼즐, 

어렴풋한 감정들을 모아 

자기만의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하나의 ‘나’라는 이야기를, 

그렇게 매일 새롭게 덧칠하며 만들어간다.

 

 


그래서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의미 있다. 

 

추상화처럼, 

멀리서 보아야 그 본질이 드러난다. 

 

가까이 다가가면 선명한 선은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별처럼 빛나고 싶었지만, 

반딧불처럼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진짜 빛이 된다.


기억은 곧, 

나의 풍경이다. 

 

완성된 지도는 아니지만, 

방향을 제시하는 감정의 윤곽선.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찾는다.

 

기억은 사실이 아닌 감정의 흔적이다. 그림처럼 번지고, 노래처럼 반복된다

 

나라는 존재도 결국, 수많은 기억의 추상화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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