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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단상/🔴언어의 맛

적당히 – 애매함과 지혜 사이

by senpebble 2025. 5. 13.

 

삶은 뜨거움으로 상처입고, 적당함으로 희미해진다.

 

“적당히 해.” 이 말에는 상반된 온도가 담겨 있다. 한쪽은 다정한 권유처럼, 한쪽은 싸늘한 단절처럼.

누군가는 ‘적당히’를 균형이라 말한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절묘한 조절.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적당히’ 속에서 열정이 식고 책임이 흐려진다고 말한다.

나는 두 시선 사이에서 망설인다. 살기 위해 적당히 해온 날들, 살아 있다는 느낌을 잃은 날들. 어쩌면 ‘적당히’는, 가장 복잡한 감정의 교차점인지도 모른다.

 

 

적당히는 언제나 유혹처럼 다가온다.


너무 무리하지 마,

너무 기대하지 마,

너무 드러내지 마.


그렇게 적당히 웃고,

적당히 아끼고,

적당히 참다 보면

 

어느새 나는 모서리가 다 닳아버린 사람처럼
무난해졌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나 뜨겁게 살 수도 없었다.


한때 나는 ‘정말로’ 해보겠다고,
모든 걸 쏟아붓고,

깊이 사랑하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다 부서졌다.
사람에게,

일에게,

스스로에게.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적당히’를 택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걸음.


감정에도,

관계에도,

기대에도 적당한 두께를 입혔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현명하다’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슬펐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미련하게 뭔가를 좋아해봤던가.


상처받을 각오로 달려든 적은 있었던가.
그토록 애써 배운 적당함이
어쩌면 내 안의 뜨거운 것을 다 식혀버린 건 아닐까.

 

 

적당히는 나를 지켜주었지만,
나를 살아 있게 하진 못했다.


그 절묘한 온도는 너무 오래 쐬면
심장까지 무뎌지게 만든다.

 

 

이제는 안다.
적당히는 삶의 리듬이지,
삶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걸.

 

가장 큰 용기는, 적당히의 유혹을 넘어설 순간을 아는 것이다.

 

때론 과한 감정,

무모한 시도,

깊은 상처가
삶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만큼은
적당히를 조금 벗어나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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