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누군가의 인생 지침 같았던 이 문장을 나는 조금 바꿔 말했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
처음 홍어를 마주했을 때, 내 코와 눈과 마음은 동시에 움찔했다. 그건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혹시… 이걸 모르고 죽는 건 억울한 일 아닐까?”
그 한 번의 충격 이후, 나는 도전했고, 마침내 지금은 누구보다 잘 먹는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단순히 미각의 영역을 넘어,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았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내게는 수많은 실패와 도전의 순간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익숙한 맛의 테두리 안에서만 즐거움을 찾았다.
달고, 짜고, 매운 자극에 길들여진 혀는 다른 소리에 귀 기울일 줄 몰랐다.
홍어를 처음 마주했을 때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동아리 술자리에서 건네받은 그 삼합 한 조각 앞에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웠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향은 마치 경고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건 먹는 게 아니야"라고 본능이 속삭였다.
주변의 웃음과 격려 속에 겨우 한 조각을 입에 넣었지만,
그것은 진정한 경험이 아니었다.
맛을 느끼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거부했으니까.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남도 여행 중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다시 홍어를 만났다.
이번에는 달랐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기억했다.
호기심과 겸손한 마음으로 천천히 음미했다.
첫 순간의 충격은 여전했지만,
그 너머에 숨겨진 깊이와 복합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발효가 만들어낸 깊은 맛의 지층,
특유의 식감이 주는 생경한 즐거움.
거부감은 어느새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단식의 경험은 또 다른 차원의 깨달음을 주었다.
일주일간의 정해진 루틴에 따라 단식 시간을 보낸 후,
처음 입에 넣은 사과 한 조각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마치 평생 흑백으로만 보던 세상에 갑자기 색이 입혀진 것 같았다.
단순한 사과 한 조각에서 수십 가지 맛의 파도가 밀려왔다.
달콤함과 상큼함의 완벽한 균형,
과육의 미세한 질감,
수분이 혀에 퍼지는 순간의 청량함까지.

그제야 깨달았다.
내 미각은 마비되어 있었다.
달고, 짜고, 맵고, 각종 조미료에,
과도한 자극에 노출된 혀는 점점 더 강한 신호만을 찾게 되고,
결국 식재료 본연의 섬세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단식은 마치 컴퓨터를 초기화하듯 내 미각을 리셋시켰다.
미각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낯선 음식 앞에서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느낀다.
각 나라와 지역의 음식은 그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환경을 담고 있는 살아있는 언어다.
한 점의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때로는 그 언어가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자신의 한계이지,
음식의 한계가 아니다.
당신의 혀는 진정한 맛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단지 익숙함만을 찾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편안함을 위해 새로운 경험의 문을 닫는다.
하지만 그 문 너머에는 얼마나 많은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미각의 지도는 용기 있는 이에게만 그 숨겨진 대륙을 드러낸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참~ 많다.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그 수많은 맛난 것들을 맛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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