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이 뭐라고 했지?
나는 한때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펼쳤다가, 책을 덮은 손보다 한숨이 더 먼저 깊어졌다. 문장을 한두 줄 읽고, 내 머릿속에도 침묵이 찾아왔다. 도대체 뭔 소리야, 싶었으니까. 대학 시절의 일이지만, 지금 다시 펼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 같은 밤이면 뜬금없이, 그가 했던 그 유명한 말들이 귓가를 스치고 간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등등
그 문장들, 분명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내 안에서 문이 열리는 기분.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비트겐슈타인, 그는 대체 뭐라고 했던 걸까?
말로 담기지 않는 마음은, 여전히 존재하는 마음이다.
가수 신해철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고 들어는 봤지만,
비트겐슈타인을 처음 만난 건 시립 도서관이었다.
두꺼운 철학서가 아닌, 단 하나의 문장이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 말이, 마치 나에게 ‘네가 모르는 것을 말하려 하지 말라’고 하는 듯해,
당시엔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문장을 넘기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문장은 나를 오래 따라왔다.
삶이란 늘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슬픔,
사랑,
부끄러움,
그리움…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 내 안에 머물다가 떠나곤 했다.
그 모든 무언의 감정 앞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침묵이 떠올랐다.
‘아, 그래서 침묵해야 한다고 했구나.’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 말도 처음엔 어려웠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자주 말문이 막히는 나 자신을 보며,
아, 내가 이 세계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언어가 너무 짧고 가볍기 때문이란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사용되는 방식이다.”
라고도 말했다.
그 문장은 언어를 정의서가 아닌 살아있는 생물로 보게 만들었다.
정의가 아니라 쓰임. 의미는 사전이 아니라 대화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
그건 철학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 가까운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문장,
“철학은 언어에 의해 우리의 지성이 미혹된 것에 대항하는 싸움이다.”
그 문장을 곱씹으며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우리는 말을 너무 믿는다.
어떤 말은 진실을 밝히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
철학은 바로 그 언어의 미로 속에서, 진짜를 찾아가는 여정일지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어렵다.
하지만 그의 말은, 언어를 넘어서는 마음의 무게를 알려준다.
그는 우리에게, 말을 줄이고 마음을 더 느끼라고 말하는 듯하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설명되지 않는 순간 앞에서
우리는 침묵하고, 그 침묵이야말로 진짜 말이 된다.
오늘 이 밤, 다시 그를 떠올린 이유는 아마도,
내가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
내가 말하지 못하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단어는 씨앗이고, 언어는 정원이다.
나는 문장의 울타리 안에서 세계를 가꾼다.
그러나 어떤 감정은 끝내 이름 붙일 수 없어, 언어 밖에서 자라난다.
그때 나는 알게 된다. 침묵도 하나의 꽃이라는 것을.
비트겐슈타인의 정원은 말보다 여백이 깊었다.